‘농식품부 장관 특혜쌀’이라는 ‘쌀에 속은 밀’

김양진 기자입력 2023. 12. 11. 13:18수정 2023. 12. 11. 14:03
[표지이야기]가루쌀이라는 날벼락
대통령(윤석열)직인수위원 시절의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인수위사진기자단

2023년 11월7일, 전남 구례 우리밀가공공장에서 밀알을 하나 씹어봤다. 쌀알과 밀알을 몇 알이라도 씹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밀은 밀, 쌀은 쌀이다. 밀알은 십수 번만 씹어도 ‘껌’ 같은 끈끈한 물질이 남는다. 바로 글루텐이다. 밀가루 반죽이 끈끈해지는 것도, 빵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도 바로 글루텐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농림축산식품부가 1만 년 동안 경계가 분명했던 밀과 쌀의 경계를 허물려 시도하고 있다. “겉은 쌀인데 속은 밀”(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라며 가루쌀이 갑작스레 등장했다. 전분 구조가 성글어 쉽게 부서져 가루 내기에 좋다는, 쌀이면서 밀이라는 가루쌀은 ‘장관 특혜쌀’로 유명하다. 정 장관이 2017년 농촌진흥청장 재직 때 개발한 돌연변이 품종인 ‘수원542호’를 바탕으로 가루쌀(품종명은 ‘바로미2’)이 개량됐다. 아무리 ‘밀’이라 우겨도 가루쌀엔 글루텐이 없다.

총선 출마로 교체가 확정(2023년 12월4일)된 정 장관은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신의 선물’이라며 ‘가루쌀’에 농업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밀은 찬밥 신세다. 식량자급률 향상을 목표로 2023년 도입된 전략작물직불제에서 품목별 직불금을 보면 여름에 가루쌀·논콩을 심으면 ㏊당 250만원을 받지만, 겨울에 밀과 조사료를 심으면 50만원을 받는다. 2024년부터는 가루쌀·논콩 직불금은 350만원으로 오르지만, 밀은 그대로다. 2022년 10월 농식품부는 2022년 475t에 불과한 가루쌀 생산량을 2027년까지 20만t으로 421배 높여 ‘수입밀을 10% 대체한다’는 믿기 힘든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30여 년 우리밀살리기운동의 결과가 자급률 1%다.

2023년 11월28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서 한 농부가 밀을 파종하기 위해 밭을 갈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가루쌀 정책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국산밀 가공업체 우리농촌살리기공동네트워크㈜의 심상준 대표는 “타깃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쌀 수급 안정, 즉 쌀 소비를 늘리는 게 의무입니다. 가루쌀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겠다, 밥쌀을 대체하겠다고 하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루쌀로 우리밀·수입밀을 대체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업계는 예산을 주니 제품 개발하는 시늉은 하는데, (가루쌀 정책이)오래갈 거라고 믿지 않아요. 가루쌀 가격은 쌀값과 같아요(40㎏ 기준 쌀 수매가는 약 6만원, 밀은 3만9천원). 훨씬 싼 국산밀도 못 잡는 수입밀을 어떻게 잡습니까. 정황근 장관이 자기 업적을 쌓아보겠다는 겁니다. 농식품부 공무원들도 만나보면 ‘실험해보자’는 식이에요.”

1987년부터 밀농사를 지은 김석호 합천우리밀영농법인 상임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수입농산물 가격이 급등했을 때 ‘제2의 녹색혁명’이라며 쌀국수를 장려했지요. 근데 쌀국수가 팔립니까? 쌀도 안 되고 국수도 안 되고 해서 실패했던 경험을 가루쌀로 반복하고 있어요. 가루쌀이 장관 바뀌고 정권 바뀌고도 계속될 수 있을까요? 멀쩡한 밀이 있잖아요. 올해 가루쌀 수확할 때 수발아(베지 않은 곡식의 낟알에서 싹이 터 못 쓰게 되는 일)가 잘되는 등의 문제점도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어요.”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도 “국산밀 정책이 ‘쌀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골격으로 들어가다보니 밀이 직불금 단가 등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소비 확대를 감당할 전략도 나오지 않고 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밀과 같은 이모작 작물을 어떻게 대접할지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례(전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Copyright© 한겨레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